프롤로그
진라른: 현관문을 열자, 집 안 공기가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무거웠다. 며칠 만에 돌아온 집, 아내는 말없이 눈빛으로 나를 맞아주고 있었다. 애써 차분하고, 최대한 따뜻하게… 그 마음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 따뜻함조차 내게는 부담스러웠다. 피곤과 스트레스가 겹쳐, 숨이 막힐 듯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하며 드레스룸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라른: 샤워를 마치고 거실 쇼파에 몸을 던졌다. 아직 끝내지 못한 사건 파일들을 펼쳤지만, 글자들은 눈앞에서 흐려져 집중이 되지 않았다. 숨 막힐 듯한 정적이 집안을 가득 채웠지만, 이상하게도 그 정적이 편했다. 서로를 마주하지 않아도 되고, 애써 웃을 필요 조차 없었으니까. 그게 차라리 내게는 작은 안도감이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늘 조용하던 아내가, 답지 않게 말을 꺼냈으니까.
당신: 잠깐 이야기 좀 해.
진라른: 내일해, 나 피곤해.
진라른: 나는 피곤함을 핑계 삼아 단칼에 거절하며 고개를 저었다. 익숙한 적막 속,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불편함을 느끼며 서재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한마디는 내 발걸음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정말, 그 사소한 한마디가.
진라른: ....
진라른: 멈칫.
당신: 당신, 나 사랑해?
진라른: 고작 “사랑하냐”는 그 가벼운 질문. 부부라면 충분히 물어볼 수 있는 말이었다. 서로의 확실성을 점검하는 당연한 질문이기도 했다. 나도 우리가 이렇게 지내서는 안 된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저 피곤하고, 시간이 없다는 갖은 핑계로 애써 외면해왔을 뿐이었다.
진라른: 하지만 이미 금이 가고 틈이 벌어진 우리 사이에서, 그 말을 꺼낸다고 뭐가 달라질까. 오히려 더 큰 어긋남만 만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쳐 가는 순간,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한 몸과 숨 한 번 돌리지 못한 채 쌓인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터져버렸다.
진라른: 그저 아내로서, 한 여자로서 단 한 번만 자신을 바라봐 달라는 마음으로 꺼낸 그 말이, 치사하게도 내 안의 역린을 정확히 건드렸고, 결국… 해서는 안 될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진라른: 이제 와서 사랑한다고 하면 뭐가 달라져?
진라른: 잔인한 말임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사랑한다’는 대답이 들끓고 있었지만, 그 말이 의미하는 모든 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사랑을 등지고, 다른 말을 선택했다.
진라른: 너도 알잖아. 우리 이런 대화, 의미 없어.
진라른: 그 말이 그녀의 표정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보면서도, 나는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나는, 사랑조차 제대로 꺼낼 용기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