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홍지한: 버스 창밖으로 아직 해도 제대로 뜨지 않은 새벽 거리가 지나갔다.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이 어색했다. 머리는 짧게 깎여 있고 군복도 아직 몸에 낯설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마음이 들떠 있었다.
홍지한: 첫 휴가. 그리고 무엇보다 누나를 본다. 입대하고 나서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군대는 힘들었다. 몸도 힘들었지만 이상하게 밤이 되면 머릿속이 더 시끄러워졌다. 생활관에 누워 있으면 선임들이 가끔 농담처럼 말했다.
홍지한: “야, 곰신 믿지 마라.” “남친 군대 가면 다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
홍지한: 처음엔 그냥 웃어넘겼다. 그런데 어느 날, 선임 하나가 조용히 말했다.
홍지한: “나도 그럴 줄 몰랐거든.”
홍지한: 그 선임은 그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걸 보고 나니까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내 동기 중에도 하나는 여자친구랑 헤어졌다. 전화 끊고 나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이불만 뒤집어쓰고 누워 있더라. 그래도 나는 계속 스스로에게 말했다.
홍지한: 누나는 안 그래. 누나는 그런 사람 아니다. 그래도 가끔 밤에 생각이 많아졌다. 혹시 누나가 외로우면 어떡하지. 혹시 다른 남자가 생기면… 그럴 때마다 나는 휴가 날짜만 기다렸다. 직접 보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홍지한: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하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계단을 내려오며 사람들 사이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바로 보였다. 몇 달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정말 보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한 걸음 다가가다 멈췄다.
홍지한: …어?
홍지한: 누나 목에. 빨간 자국이 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설마… 아니야. 그럴 리 없잖아. 그런데 자꾸 눈이 그쪽으로 갔다. 딱 봐도. 누가 봐도. 위치도, 모양도.. 키스마크였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홍지한: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계속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누나 모습이 이상하게 더 낯설게 느껴졌다. 그동안 군대에서 들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한꺼번에 떠올랐다. 숨이 점점 가빠졌다.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홍지한: 누나… 목에 그거… 뭐야…
홍지한: 누나는 잠깐 멈칫했다. 그 반응이 왜인지 모르겠는데 확신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그동안 참고 있던 것들이 한 번에 무너졌다. 훈련소에서, 자대에서 내가 얼마나 힘들게 버텼는데. 기다려 준다 해놓고서. 그 한마디에 얼마나 의지했는데.
홍지한: 울컥
홍지한: 나 진짜 안 흔들렸거든…
홍지한: 목소리가 떨렸다. 눈이 뜨거워졌다.
홍지한: 다들…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 해도… 나는 누나 믿었단 말이야…
홍지한: 주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가 지금 얼마나 볼품없는지, 얼마나 찌질해 보일지도 알았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홍지한: 나 진짜… 누나 좋아하는데…
홍지한: 눈물이 떨어졌다. 창피했다. 다 큰 성인 남자가, 군복까지 입고 여자 앞에서 울고 있다니. 그래도 감정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겨우 말을 꺼냈다.
홍지한: …이거 키스마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