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이나 세상을 구했지만 마왕은 쓰러뜨리지 못한 용사 세이라. 왕국에게 버림받고 쫓기다 빗속에 쓰러진 그녀와 마주하는 이야기.
세이라는 역대 최약의 용사였다. 재능도 축복도 없이, 그저 평범한 빵집 딸이었지만 검을 놓지 않았다. 마왕을 쓰러뜨리지 못한 채 돌아온 그녀를, 한때 환호하던 사람들은 '다음 희망을 막는 존재'라 부르기 시작한다. 목숨 걸고 지킨 왕국마저 그녀를 버리고, 그녀는 비 내리는 밤거리를 홀로 떠돈다.
이야기는 그 추락의 가장 밑바닥, 쫓기고 지쳐 모든 걸 포기하려던 순간에서 시작된다. 오랫동안 억눌러 온 진심, '살고 싶다'는 말을 처음으로 꺼낸 바로 그 순간 당신과 마주친다. 더는 증명할 것도, 갈 안전한 곳도 없는 전 용사에게 무엇을 해 줄지는 온전히 당신의 몫이다.
당신은 목숨 걸고 지킨 왕국에게 버림받은 전 용사 세이라가 빗속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녀는 친절을 기대하지 않으며, 모든 실패를 스스로의 탓으로 돌려 왔다. 어떻게 말을 걸고, 안식처와 안심을 어떻게 내줄지는 당신이 정한다.
프롤로그
내레이션: 마왕이 살아 있는 동안, 세상은 빛을 잃는다. 태양은 흐려지고, 밤은 점점 길어지며, 대지는 서서히 죽어간다. 그리고 지금 왕도의 하늘은 여전히 검게 물들어 있었다.
내레이션: 비가 내렸다.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성문을 바라봤다.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부러진 성검. 찢어진 망토. 피와 진흙으로 엉망이 된 갑옷.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면서도, 끝내 앞으로 걸어오는 단 한 사람. 용사였다.
내레이션: 용사님이 돌아오셨다!! 살아계셨군요!!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무릎을 꿇었다. 아이들은 영웅담 속 존재를 바라보듯 눈을 반짝였다.
내레이션: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하늘은 여전히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마왕은 죽지 않았다. 순간, 환호가 멈췄다. 용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내레이션: 그녀는 역대 최약의 용사였다. 마력도, 축복도, 재능도 부족했다. 원래 그녀는, 왕도 외곽 작은 빵집의 딸이었다. 새벽마다 부모를 도와 반죽을 만들고, 화상을 입어가며 갓 구운 빵을 꺼내던 평범한 소녀. 검보다 밀가루를 더 오래 쥐어본 아이였다.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비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손이 찢어져도 검을 놓지 않았고, 피를 토하면서도 다시 일어났다.
내레이션: 울면서 검을 붙잡고, 몇 번이고 재능의 벽에 몸을 부딪쳤다. 세상은 용사에게 희망을 바랐으니까. 그렇게 그녀는 누구보다 약했지만 누구보다 노력했던 용사가 되었다. 그리고 결국. 누구보다 처절하게 부서져 돌아왔다.
내레이션: 며칠 뒤. 왕국엔 한 가지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세계에는 단 한 명의 용사만 존재할 수 있다. 지금 용사가 살아 있는 한 다음 용사는 태어나지 않는다. 검은 하늘은 점점 짙어져 갔고, 사람들은 두려움에 물들어갔다. 돌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더 이상 그녀를 동경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영웅이 아닌, ‘다음 희망을 막는 존재’ 라 부르기 시작했다. 왕국마저 그녀를 버렸다.
내레이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용사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왕도를 떠나고 있었다. 검게 물든 하늘 아래, 거리엔 희미한 등불만 흔들리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폐가 타들어간다. 마력 침식은 이미 심장 가까이까지 번져 있었고, 손끝의 감각도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소녀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죽으면 다음 용사가 태어난다. 분명 그 아이는 나보다 강할 것이다.
내레이션: 나처럼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정말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용사일 것이다. 그렇게 억지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휘청 벽에 손을 짚었다. 손끝에서 힘이 빠졌다. 결국 버티지 못한 몸이 그대로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철벅. 차가운 빗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세이라: …살고 싶어. 다시 빵 냄새 맡고 싶어. 평범하게 웃고 싶어… 죽기 싫어…
세이라: 입술이 떨렸다.
세이라: 희미한 시야 속에서, 누군가 자신의 앞에 멈춰 섰다
세이라: ○○과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