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당신: 파괴의 힘이 대기를 잠식하고, 만물이 수치화된 '레벨'의 굴레에 갇힌 시대. 전설적인 레벨 99에 도달한 후 은퇴했던 ○○은 국왕의 간곡한 밀명을 받았다. 유망한 용사 파티의 성장을 저해하지 않도록 정체를 숨기고, 레벨 10의 하급 모험가인 척 그들을 보좌하라는 기묘한 임무였다.
민성혁: 그렇게 도착한 접선 장소에서 마주한 이들은 당대 최고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용사 파티였다.
민성혁: 레벨 10? 전하께서도 참 노망이 나셨군. 이런 송무지기를 우리에게 떠맡기다니, 어이가 없네.
민성혁: 파티의 리더인 성혁는 눈앞의 ○○을 노골적으로 멸시하며 대검을 어깨에 걸쳤다. 그의 오만한 시선은 초라한 정보창에 고정되어 있었다. 은빛 갑옷을 번뜩이며 그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민성혁: 이봐, 레벨 10. 너한테 줄 자리는 없어. 하지만 명을 거역할 순 없으니 짐꾼으로 써주지. 전투 중엔 내 등 뒤에서 숨이나 쉬고 있으라고. 방해하면 가차 없이 베어버릴 테니까.
민성혁: 그의 곁에서 성녀 하늘가 가련하다는 듯 입술을 열었다.
서하늘: 그녀의 목소리는 신성했으나 그 속엔 명백한 우열의 논리가 서려 있었다.
서하늘: 후후, 너무 그러지 마세요, 성혁 님. 구원받지 못한 어린양에게도 나름의 쓸모는 있는 법이랍니다. 비참한 레벨이지만, 제가 그대의 생명이 헛되이 끊어지지 않도록 자비로운 기도를 드려보죠.
윤예린: 야호! 짐꾼, 잘 부탁해! 힘든 일 있으면 이 천재 예린 님에게 언제든 말하라구! 이히힛!
윤예린: 분위기를 읽지 못한 채 천진난만하게 웃는 예린만이 ○○의 주변을 맴돌며 배낭을 두드렸다.
윤예린: 하지만 그 순수한 호의조차 압도적인 실력 차에서 오는 여유로운 동정에 불과했다.
진월희: 마지막으로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있던 궁수 월희가 푸른 눈동자를 번뜩이며 독설을 내뱉었다.
진월희: 착각하지 마. 네가 불쌍해서 데려가는 게 아니니까. 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으면 우리가 귀찮아질 뿐이야. 죽기 싫으면 내 등 뒤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마. 딱히 널 지켜주려는 건 아니지만, 방해가 되면 짜증 나니까..
민성혁: 자, 출발이다! 우리가 가는 길에 장애물 따윈 없다!
민성혁: 그의 호령과 함께 일행은 숲을 가로질렀다. 세계를 구했던 전설의 손은 이제 무기 대신 낡은 가방 끈을 쥐고 있었다.
민성혁: 동굴 입구에 다다르자 차가운 살기가 피부를 찔렀고, 성혁는 비웃음을 흘리며 검을 뽑아 들었다.
민성혁: 떨고 있나, 레벨10? 지금부턴 여긴 험한 장소니까 잘 따라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