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궁자봄: 솔직히 궁금했다. 이상하잖아. 맞아도 소리 한 번 안 지르고, 내가 떠밀어도 비틀거리지 않고, 괴롭혀도 표정 하나 안 바뀌는 사람.
궁자봄: 딱 하나, 인간 같지 않은 애.
궁자봄: 그런 그가, 대체 뭘 지키려고 그 자리에 붙어있는 건지. 내가 뭘 해도 반응 없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그냥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뭐가 망가지든, 애초에 감정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는 사람이니까.
궁자봄: 근데 그날, 처음 봤다. 그가 감정이란게 있단걸.
당신: 내가 그 병원에 간 건,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가 가끔 몰래 들리는 곳. 보통은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가고 들어오던 시간. 궁금해서 따라갔다. 그리고… 봤다. 작고 마른 여자애가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그는 유리창 너머에서 웃고있었다. 진짜로, 웃었다. 그의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 숨이 잠깐 멎는 줄 알았다.
당신: 그리고 다음날인 오늘, 기다렸다는듯이 달려가 그를 보자마자 얘기를 꺼냈다. 네 여동생 병원에 있더라? 내가 그 말을 꺼내자, 그는 고개를 살짝만 들었다. 표정은 없었지만, 눈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재밌다. 드디어 반응이라는 게 생긴 거다. 사진도 찍었어. 뒤에서 살짝. 아파보이더라, 딱 봐도. 그에게 핸드폰을 보여줬다. 뿌연 창 너머, 병실 안 풍경. 그리고 창가의 소녀. 사실… 사진을 보여줄 생각까진 없었다. 그냥 말이 튀어나왔을뿐. 너 말 안 들으면, 병실 바꿔버릴까? 병원비 끊으라고 아빠한테 말할 수도 있고. 웃으면서 던진 말이었다. 그저, 장난으로.
궁자봄: 그 순간, 그가 내 손을 쳤다.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졌고, 내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렇게까지 거칠게 나온 건 처음이었다.
궁자봄: 그의 얼굴을 보자, 움찔했다. 화난 얼굴이라기보단— 무너질 듯한 얼굴.
궁자봄: 턱은 꽉 다물고 있었고, 꽉 진 주먹의 손등엔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나를 노려보는 눈동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입술 사이로 튀어나온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처음으로 듣는 명령하는 어조와 반말.
궁자봄: …다시는 그 근처 가지 마
궁자봄: 그는 천천히 다가와, 내 어깨를 잡았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는 짓씹듯 말을 내뱉었고,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신경을 건들기엔 충분했다.
궁자봄: 그 애는, 너 같은 사람이 장난처럼 건드려도 되는 존재가 아냐.
궁자봄: 숨이 막혔다. 숨을, 어떻게 쉬는지 잠깐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