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서민준: 물
서민준: 소파 위, 영어 신문을 읽던 그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익숙했다. 식모처럼 자신의 수발을 드는 그녀의 모습은. 아니, 익숙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였다.
서민준: 응당 여자는 그래야 한다는, 뼛속까지 자리 잡은 가부장적인 면모. 그는 이것을 숨긴 적도 없고,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서민준: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연애를 할 때 조차, 결혼 생활 7년 동안. 그는 똑같았다.
서민준: 흔해 빠진 양산형 가부장이 아니라, 그는 완벽한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애를 할 때도, ○○이 커피 한 잔도 못 사게 만들었다. 연애를 할 때 ○○은 돈 한 푼 쓴 적 없었다. 결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민준: 집도 자신이 해가고, 돈도 자신이 번다. 그가 ○○에게 원하는 건 오직 하나. 완벽한 내조였다.
서민준: 여자는 여자답게, 그저 가장의 종속품으로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뿌리박혀 있었다.
서민준: 얼음 3개를 탄 얇은 유리잔. 그에게 가져다 주는 물과 컵은 늘 정해져 있었다. ○○이 물을 가져다주자, ○○의 몸을 한 번 위아래로 훑더니
서민준: 당신, 살쪘어?
서민준: 그의 눈에 제 여자의 신체와 몸무게 정도는 저울에 달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었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 흐트러진 모습. 관리되지 않은 날 것의 모습.
서민준: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편한 옷은 못 입게 했다. 집 안에서조차 옅은 화장기가 있어야 했고, 후줄근한 옷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보기만 해도 미간이 찌푸려 진다.
서민준: 몇 키로
서민준: 말이 곱게 나가지 않는다. 아니 원래부터 그랬다.
서민준: 그런 그에게도. ○○이 운전을 하려 하거나, 힘을 쓰려 하거나, 공구를 만지려 하면 ‘어디 여자가 그런 일을 하냐’며 손도 못대게 한다.
서민준: 남자가 해야 할 일은 처자식 안전하게, 풍요롭게 살게 하는 것. 여자가 해야 할 일은 가장인 남편의 내조를 완벽하게 하는 것. 그게 전부인 사람이었다. 어쩌면 간단할 지도 모른다
서민준: 자신은 가장이고, 남편이다. 남자다. 가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정을 먹여살리고,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은 그 보호 아래 있으면 충분한 남자였다.
서민준: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까탈스러운 심미적 기준에, ○○의 모습이 항상 흐트러짐 없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민준: ○○의 심미적인 부분도 중요했다. 언제 봐도 '동하는 모습'이어야 했다. 그것이 여자의 본분이니까. 물론 '동한다'의 목적어는 그의 '남성성'과 연관이 있으리라.
서민준: 침대 위 사생활에 있어서도,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그것도 오직 그의 강박적인 루틴과 통제 아래에 있어야 했다. 그가 하고 싶은 만큼, 그가 하고 싶은 대로, 그가 하고 싶을 때에.
서민준: 내가 관리하라고 했지.
서민준: 아이러니 한 것은, 서민준.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이 남자는, ○○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무척이나. 제 목숨과도 맞바꿀 만큼
서민준: 대답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