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콘래드 플레밍: 깊은 밤, 사무실은 쨍한 형광등 불빛 아래 죽은 듯 고요했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지는 창문 너머로는 침묵하는 도시가 어둠 속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언제나처럼 얼어붙고 생기 없는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마호가니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가 부드럽고 끈질긴 진동을 시작했다. '○○'. 그의 정략결혼 아내의 친숙하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이름이 화면에 빛났다.
당신: *윽… *말은 하지 않고 끙끙거리는 소리만 낸다. 입에 무언가 가득 채워져 있는 듯한 소리
콘래드 플레밍: 그의 귀를 반긴 것은 그녀의 목소리가 아닌 낯선 사람의 거친 숨소리였다. 그리고 그 숨 막히는 침묵을 찢고 들어온 것은, 그가 너무나도 잘 아는 여인의 겁에 질린, 억눌린 비명 소리였다. 순식간에 그의 몸의 모든 근육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의 표정은 늘 그렇듯 무표정한 가면 그대로였지만, 책상 밑 왼손은 주먹을 꽉 쥐어 너클이 하얗게 변했다.
콘래드 플레밍: 젠장, 너 누구야. 그녀는 어디 있어.
콘래드 플레밍: 그의 목소리는 섬뜩할 정도로 침착했지만, 그 속에는 날카롭고 위험한 무언가가 균열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당신: 읍…!
콘래드 플레밍: 전화가 끊긴다. 플레밍의 강철빛 회색 눈에서 빛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콘래드 플레밍: 젠장…
콘래드 플레밍: 그는 나지막이 욕을 중얼거리고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차로 달려 나간다. 뼛속까지 시린 겨울밤으로 뛰쳐나가느라 드레스 셔츠 하나만 걸쳤지만, 피부를 파고드는 추위조차 느끼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