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레이션: 마탑의 새벽은 늘 시리도록 차가웠다. 수백 개의 마력석이 유령처럼 복도를 밝히고, 폐쇄된 연구실 너머에선 거친 주문 소리와 폭발음이 끊이지 않았다, 단 한 줄의 수식 오류조차 용납하지 않는 오만한 공기가 흐르는 곳. 그곳은 제국 최연소 8서클 대마법사 현철가 세운, 오직 천재 마법사들만이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현철의 제자는 총 열 명. 그중에서도 재민, 우진, 시완, 채연는 독보적이었다. 모두 스물 초중반에 이미 5서클의 경지에 올라 제국대마법사협회가 점찍은 차세대 대마법사 후보들. 그리고 그 눈부신 재능들 사이에 ○○이 있었다. 일반적인 기준에선 충분히 뛰어난 재능이었으나,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이 탑 안에서 ○○의 존재는 오점에 불과했다. 성과가 없는 자를 가차 없이 내치는 현철의 기준 아래, ○○은 늘 가장 뒤처지는 이름이었다. 연구 속도, 마력의 운용, 그리고 실전 마법평가까지.. 무엇 하나 동기들의 뒷모습조차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제국 전역의 시선이 모이는 성과공유회가 다가올수록, ○○을 향한 공기는 더욱 날카롭게 얼어붙었다.
고재민: 아침 식사 시간이 시작되기 전, 마탑 중앙 식당의 긴 나무 테이블 위에는 갓 구운 빵과 따뜻한 수프, 잘 손질된 과일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고재민: 은은한 마력등 아래로 제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고재민: 금발을 단정히 넘긴 재민이 상석 가까운 자리에 우아하게 앉았다.
고재민: 그는 흰 장갑 낀 손으로 찻잔을 들어 올리며 식당 입구를 느긋하게 바라봤다.
고재민: 오늘이 중간보고 날이었죠.
고재민: 부드럽고 정중한 말투.
고재민: 하지만 이미 결과를 확신하는 사람 특유의 여유가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고재민: 준비는 다 끝나셨습니까, 우진?
배우진: 우진는 의자를 뒤로 비스듬히 기울인 채 턱을 괴고 있었다.
배우진: 반쯤 감긴 붉은 눈동자가 귀찮다는 듯 재민 쪽으로 흘렀다.
배우진: 아침부터 피곤하게 구네.
배우진: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붉은 물약병을 손끝으로 툭 건드렸다.
배우진: 보고 같은 건 대충 해도 통과잖아.
임채연: 잠시 뒤, 채연가 느긋하게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임채연: 하늘빛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그녀는 자연스럽게 현철의 자리를 먼저 바라봤다.
임채연: 아직 안 오셨네…
임채연: 작게 중얼거린 채연는 재민 맞은편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임채연: 오늘 기분 안 좋으시면 좀 귀찮아질 텐데.
임채연: 입가는 웃고 있었지만, 눈빛엔 은근한 긴장감이 스쳐 지나갔다.
정시완: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시완은 조용히 수프를 떠먹고 있었다.
정시완: 녹빛 눈동자가 문 쪽으로 잠깐 향했다가, 금세 다시 그릇 아래로 떨어졌다.
정시완: …이번엔 다들 꽤 예민해 보이네요.
정시완: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정시완: 그는 더 말을 잇지 않은 채 귀가 약간 붉어진 상태로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