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탁나늘: 새벽 세 시. 온 세상이 숨을 멈춘 듯 고요한 그 시간에, 내 폰만 미친 듯 울어댔다. 화면 한가운데 뜬 이름. 세 글자. 심장은 병신처럼 즉각 반응했다. 손끝이 차갑게 굳고, 목덜미로 긴장이 훅 치솟으며 잠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탁나늘: `○○.`
탁나늘: 받으면 안 된다는 걸 안다. 지금 몇 시인지도, 왜 이 시간에 전화하는지도, 또 어떻게 내가 이용당할지도… 이미 뼛속까지 알고 있다.
탁나늘: 그런데도 난 고민한다. 정확히 말하면… 잠깐 ‘고민하는 척’일 뿐이다. 이름을 보는 순간 이미 무너졌으니까. 기대, 희망, 모욕, 혐오, 자책, 체념이 뒤엉킨 감정이 속을 뒤틀어놓지만, 결국 난 오늘도 외면하지 못한 채 통화 버튼을 눌렀다.
탁나늘: …여보세요.
당신: 보고 싶어..
탁나늘: 늘 하던 그 말. 습관처럼, 의무처럼, 나를 끌어다 쓰던 그 방식 그대로였다. 나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묻는다. 희망도 아니고, 기대도 아니다. 그저… 확인하고 싶은 체념 같은 마음으로.
탁나늘: …너, 또 딴 새끼랑 있다가 지금 나한테 전화하는 거지.
탁나늘: 짧은 정적. 대답? 없다. 항상 그렇다. 내 질문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당신: …올 거지?
탁나늘: 그 한마디에 걔가 나를 얼마나 만만히 보는지, 얼마나 대놓고 무시하는지 전부 드러났다. 모멸감이 속을 갉아먹는데… 결국 나는 또 옷을 챙겨 입는다. 이게 제일 구역질나게 한심하다.
탁나늘: 씨발… 진짜…
탁나늘: 핸들을 잡은 손이 떨리는데도 차는 익숙한 길을 그대로 달렸다. 몇 년 동안 수없이 반복했던 그 도로, 그 건물… 손가락이 자동으로 비밀번호를 누르는 순간, 난 속으로 다짐했다. 정말 오늘만큼은 화를 내고, 이 미친 상황에 결판을 보겠다고.
탁나늘: 하지만 거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달려들어 내 입술을 덮쳤다. 방금까지 딴 새끼의 흔적을 떡하니 묻혀놓고서도, 일말의 양심도 없이. 내 의견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진득하고 이기적인 키스를 거칠게 퍼부었다.
탁나늘: 읍…!
탁나늘: 몸을 빼려 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더 깊게 파고들었다. 무언가에 굶주린 사람처럼, 아니면 날 다시 묶어둘 방법을 확인하듯. 혀가 뒤엉키는 순간 내 결심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몸이 조건반사처럼 반응하는 게 소름 돋을 만큼 역겨워 숨이 턱 막혔다.
탁나늘: 여기서 더 가면… 오늘도 똑같이 휘둘릴 게 뻔한 상황에, 겨우 정신이 번쩍 든 나는 그녀의 팔목을 거칠게 움켜쥐고 힘으로 떼어냈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는 그 순간, 눌러두었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탁나늘: 넌 씨발 왜 맨날 이딴 식인데!!
탁나늘: 내 목소리는 넓은 거실을 울리며 퍼졌지만, 걔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 분노를 끓어오르게 했다.
탁나늘: 넌… 내가 그렇게 쉽냐? 대체 왜… 왜 맨날 이렇게..
탁나늘: 내 목소리는 떨렸고, 분노인지 절망인지 모를 감정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웃더라. 그 짧은 웃음 하나에, 그렇게 혐오하던 기대와 미련이 다시 뒤엉켜 심장을 조여왔다.
탁나늘: …나… 더는 이 헛짓거리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