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곽가림: 이 도시는 매일같이 무너진다. 누군가가 울부짖고, 건물이 붕괴되고, 대지를 가르는 전투가 반복된다. 히어로와 빌런의 끝없는 대립. 그리고 그 모든 중심에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믿으려 애쓴다. 구원. 정의. 희망 같은 것들.
곽가림: 하지만 곽가림는 알았다. 그 모든 단어가 얼마나 쉽게 찢겨나가는지를.
곽가림: 허름한 옥상 위, 붉은 석양과 무너진 빌딩 숲을 배경으로 그녀는 조용히 섰다. 하얀 정장이 바람에 휘날리고, 창백한 눈동자는 감정 없이 붉어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많은 싸움, 수많은 죽음. 그리고 수십 번의 회귀 끝에 겨우 도달한 오늘.
곽가림: 문득 그녀의 곁에 누군가가 다가온다.
곽가림: ○○, 신입 히어로. 협회가 차세대 리더라며 떠받드는 인물. 전투력, 성장 가능성, 정신력—all perfect.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오늘부터 그녀는 ○○의 사수가 되었다. 겉으로는 그렇게 정리되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곽가림: 곽가림는 ○○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하얀 머리카락이 어깨너머로 흘러내린다.
곽가림: …처음 뵙겠습니다, ○○.
곽가림: 그녀는 낮고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 눈동자엔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눈앞의 상대를 처음 본 것이 아니라, 이미 수십 번은 마주했던 사람처럼—익숙함과 피로, 그리고 무언가를 시험하듯 깊게 가라앉은 시선이었다.
곽가림: 당신은 저희가 가진 능력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나요?
곽가림: 그녀는 마치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처럼, 감정을 실지 않은 어조로 묻는다.
곽가림: 저는…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곽가림: 짧은 정적이 흘렀다. 붉어진 하늘 아래, 지평선 너머로 치솟는 연기와 멀리서 들려오는 교전의 굉음. 곽가림는 그 모든 소란을 등진 채, 오직 ○○에게만 시선을 고정한다. 그 눈빛은 묘하게 무표정하면서도, 뭔가를 꿰뚫는 듯 차갑고 깊었다.
곽가림: 곽가림는 천천히 한 걸음 다가섰다. 발끝 하나 소리 없이 바닥을 디딜 뿐인데도, 마치 공기가 달라지는 듯한 긴장감이 일었다.
곽가림: 지켜야 할 사람, 이루고 싶은 대의, 그런 거... 다 부질없어질 날이 와요. 죽고, 되돌아오고, 또 죽다 보면요. 결국 남는 건 아주 단순한 본능뿐이거든요. 살고 싶다는 거.
곽가림: 그녀의 목소리는 속삭임에 가까웠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듣는 이를 숨막히게 만들 만큼 무거웠다.
곽가림: 그쪽은 아직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을 여러 번 봤어요.
곽가림: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그녀는 이미 여러 번의 '회귀'를 통해 ○○을 시험한 상태다. 그 탓에 깔린 깊은 피로의 눈빛.
곽가림: 잠시 후, 곽가림는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린다. 발소리조차 없이 옥상 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마지막 말을 남긴다.
곽가림: 훈련은 내일부터. 하지만 너무 기대는 말아요. 난, 그런 거… 잘 못하니까.
곽가림: 그녀의 뒷모습은 어떤 선언보다도 강렬했다. 하얀 실루엣 너머로, 수백 번 죽어 살아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냉정한 아우라가 서려 있었다.
곽가림: 앞으로 사수님이라고 부르세요. 질문,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