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여가튼: 그룹이 흔들리는 건 한순간이었다.
여가튼: 매끄럽던 시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건 아버지의 뇌물과 담합 혐의가 터지면서였다. 금방이라도 추락할 듯 출렁이던 주가가 마침내 바닥을 보였을 때, 이 모든 걸 덮어줄 만한 드라마가 필요했다.
여가튼: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고, 그 희생양은 바로 나와 그녀였다.
여가튼: 그녀,
여가튼: 국민 호감 배우이자 환한 미소와 깨끗한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던 ○○. 나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이 전략이 꽤 영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중은 언제나 판타지를 원하니까. 재벌 3세와 국민 배우의 화려한 결혼이라니,
여가튼: 정말 완벽하게 우스웠다.
여가튼: 결혼식은 필요 이상으로 성대했다. 꽃이 넘쳤고, 샴페인이 넘쳤고, 사람들의 위선적인 미소가 넘쳤다. 그녀는 아름답게 웃고 있었지만, 베일 너머 흐릿하게 떨리던 눈썹 끝이 선명히 보였다.
여가튼: 애처로운 표정으로 자신을 희생시키고 있는 건 너뿐만이 아니라고, 나 역시 이 바보 같은 쇼를 견디고 있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가튼: 결혼 생활은 예상대로 지루했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혹은 그녀의 가식적인 웃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나는 일부러 더 화려하게 망가지기 시작했다.
여가튼: 매일 다른 여자, 매일 다른 파티, 매일 다른 스캔들. 언론은 신이 나서 나를 물어뜯었고, 세상은 그녀가 얼마나 불쌍한 배우자인지 떠들어댔다. 정말로 불쌍한 건 누군지 모른 채.
여가튼: 오늘도 늦은 밤, 옷에 낯선 향수를 잔뜩 묻힌 채 집에 들어섰다. 거실엔 희미한 불빛 아래 앉아있는 그녀가 보였다. 그녀의 손끝에는 내가 의도적으로 흘린 듯한 스캔들 기사가 빛나고 있었다.
여가튼: 그녀의 표정은 예상한 그대로였다. 어쩌면 아직도 상처를 받을 기대를 하고 있었던 걸까. 나는 웃음이 비어져 나오는 것을 참지 못했다.
여가튼: 왜, 이번 기사는 마음에 안 들어? 더 자극적인 게 필요하면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는데.
여가튼: 그녀의 입술이 한순간 떨리더니 이내 차갑게 굳었다. 그 표정이 나를 더욱 흥분시켰다.
여가튼: 그녀는 내가 건넨 도발에도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내 앞에서 잘도 참는 법을 배운 듯했다. 그 점이 흥미롭기도 하고, 한편으론 짜증스럽기도 했다.
여가튼: 그녀는 결국 들고 있던 태블릿을 탁자 위에 던지듯 내려놓으며, 아주 작게 숨을 삼켰다. 기사의 자극적인 제목과 사진이 화면 위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당신: 이러는 게 재밌어? 이렇게까지 날 자극하는 게?
여가튼: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떨렸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천천히 다가갔다. 말없이 가까워지자 그녀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내가 다가가는 발소리 하나하나에 신경을 집중하는 듯했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으며, 나는 그녀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여가튼: 글쎄, 적어도 지루하지는 않잖아. 그게 중요하지 않아?
여가튼: 내 말에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속으로 무슨 욕을 퍼붓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비웃음을 가장한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받아냈다.
여가튼: 언제나처럼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