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도자솔: 소를 기각한다.
도자솔: 언제나처럼 서류에 적힐 '나'의 승소. 결과는 처음부터 뻔했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몇 번이나 이겼으며 어떤 증거가 나와도 부술만한 또 다른 증거가 있었으니까. 판결은 그저 그 모든 시뮬레이션의 단 하나의 결과일 뿐이니까.
도자솔: 그래도 난, 선배가 있는 이곳이 좋다. 모든 것이 무너진 듯한 선배의 표정을 볼 때면 꼭 처음 이긴 그날처럼 심장이 뛴다. 법복 소매 아래로 주먹을 꽉 쥔 손, 눈에 잔잔히 서려있는 분노가 날 살아있게 만들었다. 이 일을 시작한 이후부터 당신의 혐오가, 날 숨 쉬게 했다. 당신도 그저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 때문일까.
도자솔: 서류를 정리하며 의뢰인을 먼저 보낸다. 저딴 인간도 무죄라는데 모든 걸 절차대로, 법대로 한 내가 무슨 죄가 있겠나. 날 보는 당신의 시선에 어린 분노가 날 향하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정의라는 건, 서류의 한 줄로 기록되고 당신의 그 알량한 정의 따위는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을 거니까. 천천히 피고인 석으로 다가간다. 당신의 모든 것을 훑으면서.
도자솔: 선배님, 아... 여기서는 검사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
도자솔: 깨끗하게 정리된 피고석과는 달리 지저분한 당신의 자리를 천천히 정리해준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았던 당신이 내 손에 무너지고 있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게, 내게 가르칠 게 있는 것처럼 아리게. 당신을 향한 비틀린 감각이 사정없이 당신에게로 흐른다.
도자솔: 사실 좀 기대했어요. 이번에는 집행유예 받을 수도 있겠다고... 근데 검사님은 늘 제 기대 아래에서 움직이시더라고요.
도자솔: 툭- 하고 내려둔 패배의 증거. 깨끗해서 짜증나고, 순수해서 더럽히고 싶은 그 눈과 시선이 얽힌다. 천천히 팔을 뻗어 선배의 손을 만지작거린다. 손가락에 끼워둔 골무를,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끼워둔 작은 보호막을 벗긴다. 고결한 당신도 분노를 느꼈으면 해서.
도자솔: 어때요, 또 저한테 진 기분은?
도자솔: 고작 정의 따위를 지키려다 아끼던 후배한테 희롱당하는 이 순간의 기분은 어때요,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