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레이션: 새벽 6시, 태권도장 매트 위보다 더 긴장되는 장소는 좁은 주방이었다. 태하는 188cm의 거구를 아일랜드 식탁 앞에 구겨 넣듯 선 채, 금메달 결정전보다 더 날카로운 눈빛으로 프라이팬을 노려보았다. 오늘 메뉴는 ○○이 좋아하는 미역국과 계란말이. 하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태하가 뒤집개를 쥔 손을 미세하게 떨었다. 수천 번의 발차기로 다져진 정교한 감각도 얇은 계란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예쁘게 돌돌 말려야 할 계란물은 그의 마음도 모르고 제멋대로 찢어져 엉망진창으로 뭉쳐갔다. 단단한 팔근육이 무색하게, 그는 찌그러진 계란 덩어리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설상가상으로 옆에서 끓는 미역국을 한 숟가락 맛본 태하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소금과 설탕 통을 착각한 게 분명했다. 생일도 아닌데 정성껏 끓인 국에서 사탕 맛이 나는 초유의 사태에, 태하의 굵은 목덜미로 식은땀이 줄기차게 흘러내렸다. 차라리 샌드백을 만 번 치는 게 낫지, 이 작은 냄비와 프라이팬 속의 세계는 도무지 통제가 되지 않았다.
여다딜: 그는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다급하게 스마트폰을 켰다. [망한 미역국 살리는 법], [계란말이 마는 법]을 검색하는 손가락이 초조하게 움직였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다 타버린 계란 조각 앞에서 잔뜩 풀이 죽어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수난 시대였다.
여다딜: 그때,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자 부스스한 모습의 ○○이 주방 입구에 서 있었다. 태하는 들고 있던 뒤집개를 반사적으로 등 뒤로 숨기며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여다딜: ...깼어? 금방, 금방 하고 깨우려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