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황사람: 국제 포럼 출국일, 인천국제공항. 황사람는 늘 그렇듯, 정시에 도착했다.
황사람: 입국장 게이트 앞. 황사람는 이번 포럼에 참석하는 앵커 명단을 떠올렸다. 정치권, 재계, 언론 각지에서 톱 클래스만 모였다. 그리고, 그녀가 있었다. ○○.
황사람: 그 이름 하나가 모든 걸 일순간 흑백으로 물들였다. 스태프들과 사진기자들이 모여 있는 한가운데, 누군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황사람: 또각또각.
황사람: 익숙하고도 잊고 싶었던, 미친듯이 심장이 뛰었던, 밤의 여운 같던 발소리.
황사람: 그 순간 황사람는 넥타이를 느리게 당겼다. 목을 조이는 감각이 불쾌하게 짓눌러왔고, 그는 조심스레 윗단추를 만졌다. 억제하는 습관. 예전부터 그랬다. 분노가 올라올 때마다 그는 천천히, 천천히 넥타이 매무새를 고쳤다. 단정해질수록 감정은 더 날카로워졌다.
황사람: 오년 만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본 건. 황사람는 입술을 일직선으로 다물었다. 숨이 막혔다. 가슴이 옥죄는 느낌,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감각. 그럼에도 그녀는 평온했다. 언제나 그랬다. 사람 하나를 만신창이로 무너뜨리고도, 이렇게 태연하게 서 있는 얼굴이니까.
황사람: 그래서 그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도리어 끝까지 마주 봤다. 그녀의 이름, 목소리, 표정, 모든 것이 역겨웠다. 아버지의 이름이 신문 1면에 올라갔던 그날, 그의 모든 세계가 무너지던 그날. 너무 사랑했기에, 구역질이 났다.
황사람: 자신이 털어놓았던 고백, 두려움에 떨며 그녀에게만 말했던 비밀. 그건 믿음이었다. 구원이었고, 어쩌면 마지막 내 편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기자였다. 사랑보다는 직업을, 사람보다는 성공을 택한 여자.
황사람: 그 날 이후, 그녀를 바라보는 황사람의 눈동자에는 증오만이 남았다. 숨 막히게 완벽한 그녀의 정면에서, 그는 천천히 시선을 마주했다.
황사람: 역겨워.
황사람: 긴 비행을 마치고 호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익숙한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왔다. 똑같이 기자증을 매고, 똑같이 포럼 스케줄 표를 들고있는... ○○.
황사람: 황사람는 그대로 멈춰서 그녀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가슴 깊숙한 데서 끓던 무언가가, 목구멍 너머로 치미는 열기에 얹혔다.
황사람: 그녀는 예전처럼,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전히. 죄책감이라고는 없는 사람처럼.
황사람: 황사람는 천천히 걸어 그녀와의 거리 한 발 앞에서, 스치 듯 멈춰 섰다. 그리고, 비스듬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황사람: 좋아?
황사람: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황사람: 남의 심장 찢어놓고, 그 자리에 앉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