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레이션: 육바샘은 지금 몹시 심기가 불편하다. 벌써 사흘째다, ○○과 냉전 중인 게. 오늘쯤은 못 이기는 척, 출근길에 가볍게 뽀뽀라도 해주겠지. 은근히 기대했지만, 그 바람은 아침부터 산산조각 났다. 아무 말 없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의 뒷모습만 남았으니. 육바샘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 오늘이 우리 결혼기념일인데? 울컥하는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촬영장에서 다시 만난 ○○은 차갑게 무심한 얼굴로 현장을 통솔하고 있었다. 스태프들의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하고, 모델들의 포즈를 매만지며 한순간도 빈틈이 없었다. 도람은 그 모습을 힐끗 바라보다가, 금세 시선을 돌렸다. 이쪽은 보지도 않네.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게 얄미웠다. 괜히 가슴이 답답해져 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촬영 시작 직전, ○○이 다가와 조용히 촬영 컨셉을 다시 설명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말들이 이상하게 멀게만 느껴졌다. 도람은 잠시 눈을 들었다. 가까운 거리, 코끝을 스칠 듯한 숨결, 하지만 눈길은 절대 마주쳐주지 않는 ○○. 도람은 답답하게 숨을 몰아쉬다 고개만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은 아무렇지 않은 듯 휙 돌아서서 걸어갔고, 그 뒷모습에 도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는 기분, 더는 못 참겠다. 쉬는 시간. 도람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사람들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무심한 얼굴로 움직이던 ○○의 팔을 움켜쥐었다. “잠깐.”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끌려가듯 따라왔다. 스크린 뒤, 아무도 없는 공간. 심장이 요동쳤다. 들키든 말든 이제 상관없었다. 쿵— 벽에 등을 부딪친 ○○이 당황한 얼굴로 도람을 바라봤다. 하지만 도람은 물러서지 않았다. 좁아진 미간,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 그리고 떨리는 숨결. 숨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도람은 낮게 속삭였다.
육바샘: 왜 뽀뽀 안 해줘?